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특례시 더비 (문단 편집) ==== 2006-07 시즌: 창단 첫 KBL 챔피언 도전의 LG와 창단 첫 KBL 파이널 도전의 KTF ==== 2003-2004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매각이 어려운 코리아텐더는 [[진효준]] 감독의 사퇴 이후 코치였던 [[이상윤(농구인)|이상윤]] 감독대행으로 바뀐 이후 여수에서 2002-2003 시즌 4위와 4강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인해 팀을 떠나게 된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SK 나이츠에서 두개팀 플레이오프 챔피언을 이끌었던 [[최인선]] 감독이 물러나게 된 SK 나이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강양택]] 수석코치와 함께 이적을 하게 된다. 결국,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매니저 출신이자 상무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을 선임했다. 알고보면 [[이상윤(농구인)|이상윤]] 감독대행처럼 저연봉이니 영입이 가능했던 것이다. 2003-2004 시즌 중 코리아텐더는 국내 통신회사인 KTF로 매각에 성공하게 된다. KBL 사상 첫 시즌 중 매각이었다. 팀명칭도 코리아텐더 맥스텐에서 KTF 매직윙스로 바뀌게 된다. KTF 초대 감독직도 [[추일승]] 감독이 맡게 된다. 홈 구장은 부산 금정체육관이었다. 2004-2005 시즌에는 [[현주엽]]과 [[손규완]]을 중심으로 한 포워드 농구를 바탕으로 부산에 첫 봄농구에 성공하게 된다. 정규리그 4위와 6강이었다. LG는 2000-2001 시즌 KBL 파이널 진출 포함 4년간 정규리그 2-5-2-6을 포함해서 4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2004-2005 시즌에는 성적부진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2005-2006 시즌을 앞두고 두 팀에는 대형 FA로 인한 이적이 생긴다. LG는 [[박종천(1960)|박종천]]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퇴한 뒤 현대전자 및 현대 다이넷-걸리버스의 명장이었던 [[신선우]] 감독을 영입하면서 FA를 노리기 시작했는데. LG 창단 이후 1순위였던 [[송영진(농구)|송영진]]은 FA로 KTF에서 풀린 [[현주엽]]을 영입하면서 보상선수에게 제외하게 된다. KTF는 [[현주엽]]의 FA 이적 이후 포워드 라인의 구심점이 필요했는데 LG에서 보상제외된 [[송영진(농구)|송영진]]을 지명하게 된다. 추가로 TG 삼보 엑서스에서 FA로 풀린 [[신기성]]을 영입하면서 전력공백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두팀은 2005-2006 시즌 정반대의 성적을 내게 된다. KTF는 약체로 분류되었지만 통신라이벌인 SK와의 3대3 대형 트레이드로 구단 창단 1순위의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로 NBA 진출을 노렸으나 실패했던 ~~[[방성윤]]~~을 내놓고 [[조상현]]과 [[황진원]]을 영입하면서 로스터의 부족함을 채우면서 2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반대로, LG는 특별한 부상자 없이 [[조우현]]과 [[현주엽]]을 보유하고도 8위의 부진 끝에 2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 자존심이 상했던 LG는 KTF에서 FA로 풀린 [[조상현]]을 영입하면서 추가로 [[조우현]]을 내놓는 전자랜드와의 4대4 트레이드와 함께 KTF의 보상선수 최소화 전략까지 성공하게 된다. 결국 2006-2007 시즌에는 정규리그 최종전까지 2위를 놓고 경쟁하게 되는데 LG가 마침내 웃게 되었지만, 4강 플레이오프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된다. LG는 퍼비스 파스코가 장영재의 신경전에 휩쓸리며 골밑의 열세와 함께 KBL 파이널 진출을 KTF에 내놓으며 창단 10주년의 KBL 챔피언 꿈은 무산이 되게 된다. 반대로, KTF는 창단 첫 KBL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모비스 피버스와의 명승부전 끝에 준우승이라는 구단 역대 최고성적을 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